직장 내 술 문화가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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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간 카네기
- 기자,BBC 퓨처
- 2023년 3월 26일
동료들과 프로젝트를 끝낸 뒤 함께 하는 샴페인 한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의 칵테일, 한 주를 마무리하며 각자 책상에서 한 잔씩 나누는 맥주, 월급날 함께하는 술자리.
이렇듯 술은 오랫동안 회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일부 산업군에선 교대 근무를 마친 뒤 긴장을 풀며 한 잔씩 들이켜는 맥주가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다. 또한 여러 직장에서 술은 업무의 일부로, 점심이나 저녁 식사 중 술을 곁들이며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해나간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은 직장 문화를 크게 바꿔놨으나, 술 문화는 그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직장인들은 컴퓨터 책상 앞에 한 잔씩 들고 모였다. 동료들과 술집에서 함께 하는 해피아워(주류 할인 시간대)가 화상회의 플랫폼으로 그대로 이동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규칙적인 음주는 거의 제도화됐다고, 심지어 장려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음주는 대학 등에 진학해도 마치 통과의례처럼 자리 잡았으며, 직장에서도 동료 의식 고취 및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목적 아래 계속 이어져 왔다.
일부 기업에선 아예 비즈니스 전략으로 식당이나 바에서 술을 마시며 회의를 열기도 한다.
일례로 중국에선 폭음이 마치 “도덕적 계약”처럼 여겨진다. 즉 잠재적인 사업 파트너끼리 함께 술에 잔뜩 취해 친구가 되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다.
음주 관련 단체인 ‘드링크어웨어’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선 술이 공기업보단 사기업 문화에 깊이 자리한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직장 내 행사에서 음주가 예상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사기업(15%)이 공기업(8%)보다 높았으며, 또한 직장 내 사교 활동에서 술이 제공될 것이라고 답한 비율 또한 사기업 근로자(23%)들이 공기업 근로자(9%)보다 2.5% 더 높았다.
이렇듯 음주는 직장 내 사교 활동 및 전략에 있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제 일부 기업은 직장에서의 술과 술이 차지하는 역할을 재고하는 모양새다.
사실 오래전에 시작됐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개인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 직원들도 많으며, 술자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또한 걱정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추구하고, 술 없는 사교 활동을 정상적으로 바라보는 Z세대가 노동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직장 문화에서 술이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이고, 술이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술자리 압박
직장 생활에서의 술자리를 환영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직장 내 음주 문화를 강조할 경우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노르웨이 스타방에르대학 연구진이 2019년부터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고용주나 상사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직원들은 함께 마셔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스털링대학 연구진이 영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동료 및 가족으로부터 술을 마시라는 압력을 받은 적 있다고 털어놨다.
또한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음주를 강요받는 경우가 더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동료로부터 음주를 권유받는 경우가 여성 20% 더 많았으며, 상사에 의해 권유받는 경우는 37% 더 많았다.
드링크어웨어의 증거 및 연구 책임자인 엠마 캐터럴은 “직장 내 사교 행사에서 회사가 술을 지원하는 모습은 좋은 제스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직장 내 음주를 마치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라면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소외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주변으로부터 음주를 권유받는 상황이 비단 직장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2019년 음주 관련 압박을 가장 많이 하는 집단 순위를 조사한 결과 동료는 친구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캐터럴 연구원이 언급한 해당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가족보다도 동료의 권유로 인해 의지보다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술자리 문화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직장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가 직장 동료와의 사교 활동에서의 음주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밝혔으며, 53%는 동료와의 술자리 참여 부담이 적어지길 바란다고 답했다.
여러 사정과 이유로 술을 끊은 직원들에겐 이러한 술자리 참여 압박은 자신의 커리어 혹은 직장 내 위치 대한 불안감과 연관되기도 한다.
프랑스 이엠리옹경영대학원의 고든 세이레 조직행동학 조교수는 “근로자들은 보통 중요한 유대관계를 쌓거나 네트워킹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을 가장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조직이나 산업군의 음주 관행에 따라서 걱정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술자리에 대해 엄격한 규칙이 있는 기업은 많이 없지만, 퇴근 후 동료들과 다 같이 술집에 가 해피아워를 즐기는 문화가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업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직장인들은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술 문화에 순응하며 술을 마시면서 개인적인 가치나 명성, 혹은 안전까지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을 감수하느냐, 혹은 완전히 술자리에서 빠지는 대신 잠재적으로 커리어 발전 기회를 놓치는 상황 중에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움직임
그러나 이젠 직장 문화에서 술이 점점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증거가 포착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몇 년간 세일즈포스, 우버, 제트닷컴 등 직장 내 음주 횟수를 줄이거나 완전히 금지하는 대기업도 등장했다.
‘알코올 체인지 UK’의 웨일 지역 이사인 앤드류 미셸은 “최근 수십 년간 확실히 바뀌었다”면서 “술에 초점을 맞춘 직장 내 사교 활동이 점점 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점점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이 건강과 안전 문제를 넘어 직장 내 음주 문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적절한 행동 혹은 괴롭힘은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직장 외 상황에서도 술과 사람들의 관계는 변화하고 있다.
일례로 여론 조사 전문 기관인 ‘갤럽’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인의 평균 주간 음주량은 3.6회로, 2009년 4.8회에 비해 줄었다.
또한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인의 하루 최대 알코올 소비량은 점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 하루에 (여성의 경우) 30ml 또는 (남성의 경우) 40ml 이상의 술을 마셨다고 응답한 성인의 비율은 2009년 37%에서 2019년 30%로 하락했다.
한편 ‘틱톡’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술과 관련한 고민 등은 더욱 자유로워지는 추세다.
게다가 ‘드라이 재뉴어리(‘건조한 1월’이라는 뜻으로 1월 한 달간 금주하자는 운동)’와 같은 글로벌 캠페인이나 영국의 ‘10월엔 술 마시지 않기’ 등의 국가적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2013년 ‘드라이 재뉴어리’에 참여한 영국인은 4000명대였으나, 작년엔 그 수가 무려 13만 명에 달했다.
그리고 특히 청년들은 음주량을 줄이거나, 개인적인 삶과 직장에서의 삶에서 술과 단절되려는 의지가 더욱더 강하다.
진로 및 취업 관련 전문 단체인 ‘브라이트 네트워크’가 영국 학생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5%가 술이 직장 내 사교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알코올 체인지 UK’의 미셸 이사는 “어떤 환경에서든 금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음주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면서 “청년들이 사회에 점점 더 많이 진출하면서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청년들이 점점 더 높은 직위로 올랐을 때, 특히나 술 한잔이 필수적인 분야에서 지도층의 세대교체가 일어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되면) 규칙을 따로 바꾸거나 중대 발언을 내세우지 않고도 사회적 압력만으로도 술 중심의 직장 활동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술을 직원 복지로 생각하는 문화 또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제로 여겨지는 추세다.
채용 공고 플랫폼인 ‘토탈잡스’가 영국 내 근로자 2400명과 직원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료와의 술자리를 구시대적인 요소로 보는 비율은 3분의 1 이상이었다.
이제 24시간 제공되는 맥주 냉장고나 술을 중심으로 한 직장 내 사교 활동은 점점 환영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 문화에서 사라져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관계 쌓기
물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상사나 기업이 제공하는 해피아워나 연말 파티, 기업 행사에 참여해 즐겁게 술을 마신다.
‘드링크어웨어’가 BBC에 공유한 2021년 연구 자료에 따르면 영국 직장인의 4분의 1이 술이 직장 내 사교 행사에서 상당히 긍정적이거나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답했으며, 상당히 또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답변은 약 10%에 불과했다.
미국의 중독 문제 관련 단체인 ‘아메리칸 어딕션 센터스(AAC)’의 올해 자료에서도 미국인 응답자의 3분의 1 이상(38%)이 음주가 팀을 결속시키고 관계를 다지는 데 좋다고 답했다.
그러나 술 중심의 직장 문화는 이미 변하고 있다.
한때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는 공동 업무 공간 내 맥주 제공이 대표적인 혜택으로 알려졌으나, 이젠 다양한 회원사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새롭게 업데이트했다.
이에 따라 위워크가 영국에서 운영하는 사무 공간에선 여전히 맥주를 제공하고 있으나, 그 옆엔 탄산수나 콤부차, 바리스타 커피 등도 함께 놓여 있다.
한편 캐터럴 연구원은 “직장 관련 술자리를 모두 금지하자는 게 아니”라면서 “모든 사람이 술 마시길 원하는 것은 아니며, 과한 음주는 조직과 직원들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술 없이 진행되는 사교 자리 등은 술을 마시지 않는 직원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동등하게 환영받는다고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싶은 직원은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된다면 모두에게 좋은 거죠.”